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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안에서/기독자료

본회퍼의 십자가 묵상

by 小潭(炯曉) 2014. 3. 6.

 

 

 

 

 

 

 

 

기독교윤리/ 디이트리히 본회퍼/ 손규태

 

* 줄거리:

* 훈련 : 자유를 찾아 떠나려거든, 욕망과 너의 지체가 너를 이리 저리 끌고 다니지 못하도록 너의 감각과 영혼을 훈련하는 일을 배우라.

너의 영혼과 신체를 정결히 지키고, 너에게 정해진 목표를 찾아 자기를 복종시키고 순종하라.

훈련 없이 자유의 비밀을 맛 본 자는 없다.

 

* 고난 : 순간의 쾌락에 동요되지 말고, 정의를 단호히 행하고, 가능성에서 동요되지 말고, 현실적인 것을 담대히 붙잡으라.

사고의 세계로 도피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행위에만 자유가 존재한다.

 

두려워 주저하지 말고 인생의 폭풍우 속으로 나아가라

하나님의 계명과 너의 신앙이 너를 따르며, 자유는 그대의 혼을 환호하며 맞아주리라.

* 고난: 놀라운 변화! 강하고 힘찬 손이 너에게 매어져 있다.

 

무력과 고독에서 너는 네 행위의 결말을 본다.

그러나 안심하고 고요히 강한 손에 너의 의를 맡기고 홀로 기뻐하리라.

 

오직 순간에 자유를 맛보는 축복을 받아 그것을 하나님께 맡기면, 하나님께서 영광 중에 자유를 성취하리.

* 죽음 : 오라, 영원한 자유를 향한 길 위에 펼쳐진 최고의 향연, 죽음이여,

 우리의 무상한 육체와 현혹당한 영혼의 무겁고 괴로운 쇠 사슬과 벽을 치워주려무나,

 

이 세상에서는 보이지 않는 것, 저 자유를 보도록 하라.

자유여, 훈련과 행위와 고통에서 오랫동안 너를 찾았다.

 

죽어가면서 우리는 하나님의 얼굴에서 너 자신을 본다.

 

 

1. 하나님의 사랑과 세계의 몰락

* 투쟁의 세계

- 선악에 대한 지식은 모든 윤리적 고찰의 목표가 되는 것 같이 생각된다. 선악에 대한 지식은 이미 근원과의 분열이 일어났음을 지시한다.

기독교윤리는 선악에 대한 지식의 가능성에서 근원으로부터 타락을 인식한다.

 

인간은 자기 자신만 알게 되었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에 하나님과 분열이고 오직 하나님과 대립할 때에만 선악을 알 수 있다.

지금의 인간의 삶은 하나님으로부터 인간으로부터 사물로부터 자기 자신으로부터 소외된 것이다.

 

* 수치

- 수치는 부끄러움을 느낌으로 오직 사죄를 통해서, 즉 하나님과 사귐을 회복하고 다른 사람 앞에 서게 될 때만 극복된다.

 

* 수치와 양심

- 양심은 인간이 자기 자신과 분열된 것의 표지이다. 양심은 자기 자신과 하나가 되기를 원하는 타락한 삶의 소리다.

양심은 하나님의 소리로서 자기 자신과의 올바른 관계로부터 타인과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회복해야 한다.

 

- 윤리적 체험의 결단의 장소는 언제나 투쟁이다.

투쟁에서는 심판자가 요청된다 심판자는 선악에 대한 지식이며, 인간이다.

* 회복된 일치의 세계

 

- 신약성서에서

* 바리새파 사람

- 바리새파 사람들은 우연한 역사적 시대의 특수한 현상과 산물이 아니라,

거의 전 생활을 통하여 오직 선악에 대한 지식만을 중요시하는 인간, 말하자면 분열된 인간 그 자체이다.

- 심판 그것은 화해의 부름이다. 심판 자체가 타락이기 때문에 인간의 마음속에 악한 열매를 맺는다.

 

심판은 그가 심판하기 위해서 온 것이 아니라 구원하기 위해서 왔다는 사실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인간과 화해한 사람들은 심판자가 아닌 것 같이,,,

그들의 심판은 형제를 돕고 충고하여 바른 길로 인도하는 것, 형제를 격려하고 위로하는데서 성립된다(갈6장, 마18:15하).

 

* 분별하는 것

- 하나님의 뜻은 처음부터 확고하게 정해진 규범의 체계가 아니라 삶의 다양한 상황에

그때 그때 새롭고 다양하게 작용되는 것이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항상 거듭분별하지 않으면 안된다.

 

- 우리는 우리 마음대로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을 가지고 있지 못하며,

 우리의 유일한 기준은 살아 계신 주 예수 그리스도이기에 자기분별이란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의 심판에 자기를 맡기는 곳에서 성립되고 답을 얻어야 한다.

 

* 행위

- 성서가 행위를 요구할 때는 인간에게 자기의 능력이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자신을 지시한다(요15:5).

 

* 사랑

- 그가 행하고 고난당한 것이 사랑이 아니라, 행하고 고난당한 그가 사랑이시다.

그 자신이 언제나 사랑이다 사랑은 항상 하나님 자신이다.

사랑은 항상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계시다. - 이 장은 미완성이다(편집자 주)

 

 

2. 교회와 세계

- 기독교에서 가장 값진것은 그리스도 자신이다.

그는 성서, 교회, 신학의 중심이고 능력이며 동시에 인간성, 정의, 교양의 중심이고 힘이다.

* 그리스도의 전적인 요구와 배타적인 요구

- 나를 지지하지 않는 사람은 나를 반대하는 사람이다.

 라는 말과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사람은 우리를 지지하는 사람이다라는 두 개의 말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참되게 만든다.

 

* 그리스도와 선한 사람들

- 예수 그리스도는 선인 및 선과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일까? -

선은 이교도들의 빛나는 악덕이거나 성령의 열매, 이 둘 중의 하나다.

 - 그래서 복음은 선인에 대한 힘을 잃었다.

 

 

 

. 3. 형성(形成)으로서의 윤리학

* 이론적 윤리학자와 현실

- 양심적인 인간은 결단을 요구하는 압도적인 힘에 대항하여 고독한 투쟁을 한다.

-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화해된 세계의 현실에 근거를 둔 것이라면 예수의 계명은 의미와 현실성을 획득하게 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목하고 있는 사람은 실제로 하나님과 세상을 하나의 것에서 보며,

그는 그 때부터 세계 없이 하나님을 볼 수 없고 하나님 없이 세계를 볼 수 없다.

 

* 이 사람을 보라

* 인간을 경멸하는 자

- 하나님은 세계를 사랑한다. 하나님은 인간이 되었다.

* 성공한 사람

- 행위 성공 -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이 세계에서 그의 패배를 뜻하는 것이지만 다시금 역사적 승리를 거두었다는 사실은

 하나님의 역사 지배의 비밀인데, 그것은 교회의 고난 가운데서 때때로 반복되기는 하나 그것을 법칙으로 삼을 수는 없는 것이다.

 

* 죽음의 우상화

- 이 세계를 끝까지 이끄는 이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이다. 이 인격에 의해서만 하나님과 화해된 세계의 전 모습이 이루어진다.

 

* 같은 모습이 되는 것

- 그리스도의 가르침이나 기독교적 원칙들을 직접적인 방법으로 이 세계에 적용하고 세상이 형성되어야 한다고는 말할 수 없다.

오히려 인간이 되고 십자가에 달려 죽고, 부활한 인간의 유일한 모습과 같은 모습이 되는 것으로서의 형성만이 존재할 뿐이다.

 

즉 그리스도는 유일한 형성자로 존재한다. 기독교인들이 그들의 이념에 따라 세계를 형성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자기와 같은 모습으로 인간을 형성한다.

 

 그리스도가 선한모습과 경건한 생활로 이해 될 때 그리스도의 모습이 오해되고 인간의 형성 역시 그릇 이해된다.

그리스도가 인간이 되고 십자가에 달리고 부활한 분으로 믿고 신앙고백하듯이 이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변화되는 것이 성서가 말하는 형성의 의미다.

교회다. 모습이다. 율법이 아니라 인간이 되셨다.

 

- 그리스도의 모습에 따른 이중의 의미에서 첫째, 그리스도의 모습은 하나이며 동일한 것으로 일반적인 이념이 아니라 오직 일회적인 것,

사람이 되고 십자가에 달리고, 부활한 하나님으로서 존재한다.

둘째는 그리스도의 모습 때문에 현실적인 인간의 모습은 유지되고 이렇게 하여 현실의 인간은 그리스도의 모습을 받는 것이다.

 

* 구체적인 장소

- 형성으로서의 윤리는 추상적, 결정론적으로가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 우리의 세계안에서 모습을 취해 가는 데 대하여 말하려는 하나의 모험이다.

- 형성으로서의 윤리는 오직 교회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현재적인 모습에 근거해서만 가능하다.

 

교회는 거기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 취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선포하고 그 일이 일어는 장소다.

이러한 선교와 사건에 봉사하는 데서 기독교 윤리가 성립된다.

 

* 유산과 몰락

 

소담 옮긴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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