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산따라 물따라/강원도

강희맹 선생

by 小潭(炯曉) 2011. 9. 19.

 

 

 

관곡지에서 5분 거리에 연꽃마을에 진주강씨 문량공 사우및 재실 연성재전경 

 

 

이곳은 경기도 시흥시 하상동(서부간선도로 목감 I/C를 나와 물왕저수지 부근)에 있으며

지금부터 약 500년 전부터 통정공-문량공파(강희맹)으로 이어져 종중묘로 

통정공 2세손으로부터 10세손까지를 모시고, 그 이전 통정공및 부친, 1세손,7-10세손 조상님은  

연천군 왕징면 강내리(철책선 내)에 모시고 있으며

통정공 11세손 강호부,강위부께서 연천에서 평택으로 오시어 지금까지 300여년을

평택시 팽성읍 남산리 부근에 살아오며, 종중은 충남 아산군 음봉면 신수리에 모시고 있습니다.

 

강희안선생 의 묘

 

강희안 선생의 묘비

 

여기가 강희맹 선생의 묘역입니다.

 

비각(碑閣). 박증영(朴增榮)의 글씨. 경기도기념물 제87호

 

강희맹 선생 신도비

 

       『강희맹(姜希孟) 선생은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보관은 진주(晉州)이다.  자는 경순(景醇)이

       며 호는 사숙재(私淑齋)ㆍ운송거사(雲松居士)ㆍ국오(菊塢)ㆍ만송강(萬松岡)이며, 시호는 문

       량공(文良公)이다.  세종의 이질(姨姪)이고, 지돈령부사 석덕(碩德)의 아들로서 화가 희안(希

       顔)의 동생이다.

 

 

       조선 세종 29년(1447) 별시 문과에 장원급제하여, 종부시주부로 벼슬을 시작하였다.  이어

       돈녕부판사, 우찬성 등을 거쳐 성종 14년(1482) 좌찬성에 이르렀다.  당대의 뛰어난 문장가

       로서 경사(經史)와 전고(典故)에 통달하였을 뿐만 아니라, 관인적 취향을 지녔음에도 불구하

       고 농촌사회에서 널리 전승되고 있던 민요나 설화에도 남다른 식견으로 관인문학(官人文學)

       의 틀을 스스로 깨뜨려 버리는 면도 있었다.

 

 

       그리고 소나무ㆍ대나무 그림과 산수화를 잘 그렸다고 알려져 있는데, 현재 일본의 오쿠라

       [小倉] 문화재단에 『독조도(獨釣圖)』가 남아 있다.

 

 

       문집으로는《금양잡록(衿陽雜錄)》ㆍ《촌담해이(村談解)》와 할어버지와 아버지 및 형

       희안의 시를 모아 편찬한 《진산세고(晉山世稿)》가 있다.  이 밖에 서거정(徐居正)이 성종

       의 명을 받고 편찬한 《사숙재집(私淑齋集)》(17권)이 전한다.  세조 때《신찬국조보감》ㆍ

       《경국대전》, 성종 때 《동문선》ㆍ《신증동국여지승람》ㆍ《국조오례의》ㆍ《국조오례

       서례》등의 편찬에도 참여하였다.』

 소담 옮긴글

 

인재공(仁齋公), 문량공(文良公), 숙헌공(肅憲公)의 신도비

 

 

       인재공(仁齋公)은 강희맹 선생의 형인 강희안(姜希顔)이고,

 문량공 (文良公)은 강희맹 선생

      이며, 숙헌공(肅憲公)은 선생의 아들입니다. 

 

관곡지 테마공원 옆에 관곡지라는 표시판이 있어서 몇번을 관곡지에 들렸어도

커다란 기와집이 관곡지 인줄 알았더니 가까이 가보니 안동 권시 문중 사유지라고 못들어가네요

 

 담 너머로 관곡지 연못 사진 담고...ㅎ

 

세조때 중추원 부사로 진헌부사가 되어 중국 남경을 다녀올 때 연꽃씨를 채취하여지고 돌아와서 시흥시 하중동 208번지에 처음 시험재배를 하며 세조 12년에 안산의 읍호를 연성으로 하였답니다

조선 후기에는 주민중 여섯명을 연지기로 두어 각종 노역을 면해주고 연꽃만 관리하게 하였답니다

이 연못은 선생의 사위인 권만형의 집 안에 있어 대대로 권만형의 후손의 소유가 되어 현재까지 관리 되어오고 있답니다

관곡지가 안동권씨 사유지 인 이유를 이제야 알았답니다

2011/9.19

 

'산따라 물따라 > 강원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낙산사  (0) 2012.05.08
천학정  (0) 2012.05.08
소양호  (0) 2011.04.21
소양호 너머 예술 농원에서  (0) 2011.04.21
정선 협곡열차를 타고  (0) 2010.07.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