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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안에서/국내 성지순례

인천 내리교회

by 小潭(炯曉) 2011. 8.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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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85년 4월 5일 부활절에 아펜젤러와 언더우드 선교사가 제물포항에 첫 발을 디덧읍니다.

아펜젤러는

“우리는 부활절날에 이곳에 도착했습니다. 오늘 죽음의 철창을 산산이 깨뜨리시고 부활하신 주께서 이나라 백성들을 얽어맨 결박을 끊으시고, 그들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누리는 자유와 빛을 주시옵소서”

그러나 당시 국내 상황은 갑신정변의 여파로 어지러워 있었는데.

  언더우드 선교사는 한양 입경을 감행해 앨런의 제중원 교사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아펜젤러 부부는 인천에 머무르며 상황을 살피다가 4월 13일 일본으로 돌아갔다가.

6월 20일 다시 한국을 찾은 아펜젤러 부부는 여전히 입경하지 못하고 제물포에 머무르다가 7월 19일 입경했습니다.

특히 두 번째 체류 기간 동안에는 아예 초가집을 세내어 내리교회 주변에 기거하면서 기단을 쌓았습니다

 ‘내리백년사’를 집필한 홍기표 장로는 이 날을 교회 창립일로 삼았다.

아펜젤러 선교사가 인천에 머무르며 기도의 단을 쌓은 후 떠난 날이기 때문이다.

1890년 아펜셀러가 파송한 성도 노병일 씨가 자비량으로 6칸의 교회당을 건축했으며

,.1894년 한국 최초의 여성 전용 예배당을 자력으로 건축했습니다

 

아펜젤러를 뒤이어 제 2대 담임목사요 제물포 선교 책임자로 부임한 존스(趙元時) 목사는 1893년 강화 교산교회 개척을 필두로

담방리교회(현 만수교회), 강화 홍의교회, 강화 상도교회, 강화 고비교회, 부평 굴제교회 등을

차례로 개척하여 내리는 명실상부 인천 강화 선교의 전초기지가 되었습니다

 

성전안에 들어서니 내리교회 120년사의 사진과 책들이 전시되어있었습니다.

마침 행정목사님 만나서 내리교회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첫 하와이 이민을 통하여 해외에 첫 선교사를 파송하였고,

 그곳에서도 독립운동 자금, 어렵게 기금을 마련하여 해방 후 인천에 그를 기념하는 대학교 즉 인하대학교를 설립하는데 기여하였답니다.

 성극발표, 합창대회, 크리스마스 트리 장식 등 문화활동을 주도하였으며,

제1회 메시야 발표후

1954년 첫 메시야를 발표한 이래 현재까지 헨델의 ‘메시야’ 전곡을 발표하고 지금까지 매회 메시아 전곡을 발표한다고

 

웨슬리교회 전경

 

늘어나는 교인으로 인해 한국 최초의 예배당과 여자 예배당을 헐고 지붕위에서 바라보면 십자가 형태로 되어있는 예배당을 짖고 감리교 창시자 인 요한 웨슬리의 이름으로 웨슬리 예배당 이라 명명 했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웨슬리 예배당에 대한 기록을 발견할 수 없었고.  그나마 다행인 것은 최근 존스 목사님의 매일 매일의 기록(journal)과 선교보고서에서 건축의 일면을 살필 수 있는 단서를 근자에 발하여서. 웨슬리 예배당의 사진과 기록물들을 통하여   건축도면을 완성하여서 복원 사업을 펼치고 있었습니다.

황해도의  소래교회가 6.25후 명맥을 이어오지 못하기때문에  내리교회가 한국 최초의 모교회라고 설명하시는 목사님 .

성지순례길에 권사님 목사님 등을 만나서 한국 교회 성지순례길을 동행하며 교회 역사를 들을 수 있음을 하나님께 감사드림니다

2011/8.11 小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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