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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안에서/국내 성지순례

철원 장흥교회

by 小潭(炯曉) 2011. 9. 1.

 

 

 

현존하는 철원지역 최초의 교회

 


 일제의 굴레에서 해방된 직후 남한과 북한과의 정치적 경계선인 38선. 38선이 그어지면서 북측지역이 된 철원에는 사랑의 실천과 체험신앙을 중시하는 감리교가 뿌리내리고 있었다.

그래서 철원에는 일제시대 항일운동과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꿋꿋하게 마을과 신앙을 지킨 순교자들의 숨결이 남아있다
 이 철원 지역에서 현존하는 최초의 교회인 장흥교회. 서기훈 목사의 순교비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1882년 충남 논산에서 출생한 서기훈 목사는 한학을 배우던 중 기독교에 입교했다.

지금의 감리교신학대학에 입학한 후 23세되던 1914년 6월, 남감리회에서 전도사로 임명받았다.

서 목사는 철원 원산 등지에서 사역했다.

 1.4후퇴 때 공산군이 철원을 점령할 당시 서 목사는 장흥교회 청년회가 주축이 된 대한애국청년회라는 반공 우익 단체의 고문으로 활동했다. 그리고 1950년 12월 31일 공산당 정치보위부에 잡혀간 서 목사는 총살당함으로 70세에 순교했다.

 당시 증언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서 목사에게는 삶의 길이 충분히 보장되어 있었다고 한다.

1.4후퇴 때 교인들이 남하할 것을 권하자 서 목사는 이를 거절했다고 한다.

 “목자가 양떼와 생사를 같이 할 것이거늘 나 혼자 살란 말인가”가 마지막 남긴 말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는 이틀후 공산군에게 연행됐다. 서 목사는 한국전쟁이 난 후에도 피난길에 나섰다가 양떼를 두고 갈 수 없다며

되돌아와 매일 새벽종을 울렸다고 한다.

 또한 서 목사는 공산군과 마을 청년들 사이에서 화해를 도모했다.

양측간의 살상과 분쟁 속에서 서 목사는 거짓 증언을 하지 않았고

, 오히려 둘 사이를 화해시키기 위해 애썼다고 한다. 목숨을 건 일이었다.

 서기훈 목사의 묘비에는 ‘死於當死 非當死 生而求生 不是生’라고 적혀있다.

 ‘당연히 죽을 때 죽는 것, 이는 죽음이 아니오, 살아 있으면서 살기를 바라는 것, 이는 살아 있음이 아니니라’는 뜻이다.

이 글귀에서 서기훈 목사의 신앙관과 순교의 의지가 느껴진다.

거룩한 희생을 선택한 서기훈 목사는 분명 땅에 떨어져 많은 열매를 맺은 한 알의 밀알이었다.


교회 마당에 있는 서기훈 목사 순교자비

 

양지 한국순교자 기념관에 있는 서기훈 목사 순교기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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