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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안에서/국내 성지순례

철원제일감리교회

by 小潭(炯曉) 2011. 9. 27.

시대적 아픔 안고 기도했던 교회 

철원은 해방전까지 김화,평강, 포천 연천을잇는 선교의 중심지였다.

 1937년 이 곳 철원에 세워진 철원제일감리교회는 당시 500여 명 성도가 예배를 드릴만큼 규모가 컸다.

 보리스(W.M Vories) 선교사에 의해 설계되어 이 지역 최초로 붉은 벽돌을 사용해 지어진 이 교회는

 지하 1층, 지상 3층으로 건립됐다.

1층에는 1개의 소예배실과 10개의 분반공부실이 있었고 2층에는 대예배실이 있었다.

 그러나 철원제일감리교회는 역사의 변혁기에 일어나 무차별 공격으로 터와 건물 잔해만 남아있을 뿐 온전한 모습을 찾아보기란 어렵다.

하지만 민족을 구하고 신앙을 지키려다 순교한 성도들의 순결한 정신만은 오늘까지 계승되고 있다. 

 이 교회는 일제 강점기 때 성도들에 의해 독립자금을 조달하는 역할을 해왔다.

8·15 해방 이후에는 기독교 반공학생회 본거지로 사용됐다. 그러다가 한국전쟁이 일어나고 북한군에 의해 철원지역이 점령되자 북한군 막사와 병동으로 사용되는 수모를 당했다. 

 400m 떨어진 곳에는 주민들의 수 많은 재산이 강제 동원돼 북한군에 의해 지어진 로동당사까지 있어

 이 일대에 대한 북한군의 잔악성은 극에 달하기도 했다.

특히 북한군은 기도실로 사용되던 철원제일감리교회 지하실을 양민과 반공활동을 전개한 청년들을 고문하는 장소로 사용했다.

또한 퇴각할 때 이 곳을 학살의 공간으로 활용하여 충격을 더했다.

이 지역 탈환을 놓고 싸우던 중 공습으로 무너져 내린 건물에서는 수십구의 시신이 쏟아져 나와 사람들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했다.

 하지만 이 곳 성도들은 우울한 시대적 현실앞에 민족과 교회에 대한 기도를 쉬지 않고 드렸으며

신앙을 지키기 위해 순교를 선택, 우리에게 큰 교훈을 가르쳐 주고 있다.

 

 

철원제일감리교회는 2002년 근대문화유산 23호로 지정되어 관리하고 있다.

무너져버린 교회가 문화유산으로 보존되고 있는 이유는 이곳이 신앙의 터였기 때문보다는 3.1운동의 역사성을 지니고있고

 한국전쟁당시 기독청년들의 반공투쟁의 산실이기 때문입니다.

 

무너져버린 교회. 건물에서는 이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설치된 흔적도 볼 수 있습니다

 

 

 

 6.25전쟁으로 무너져버린 철원제일감리교회. 신사참배를 거절하여 순교한 많은 신앙의 선배들을 기억케 합니다

바닥에 요즘것과 별차이 없는 타일이 깔려 있고

 

 

보리스 선교사에 의해 건축되어진 철원감리교회의 조감도 모습이다.

 순수한 신앙의 산실로 자리하여 철원지역 기독청년들을 이끌어왔던 모습은 현재 사라져버리고

그 자리엔 역사의 아픔만을 간직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