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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안에서/국내 성지순례

전북 김제 금산교회

by 小潭(炯曉) 2011. 11.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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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ㄱ자 예배당 


 

 전북 김제 모악산 기슭에 있는 금산교회는 1908년 미국 남장로교 테이트 선교사에 의해 ㄱ자형으로 지어졌다. 당시 유교문화의 영향으로 남녀 자리를 구분해 지어진 ㄱ자형 예배당은 지금까지도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전라북도 지방문화재 136호로 지정됐다.

 금산교회의 ㄱ자 예배당에 들어가면 옛날 당회록과 신발장까지 그대로 전시돼 있어 마음이 숙연해진다. 오랜 세월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교회 교육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한국의 기독교의 뿌리를 알고자 이 곳을 찾는 사람들의 발걸음도 끊이지 않는다.

교회를 방문한 사람들은 ㄱ자 예배당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돌아간다.

 금산교회 ㄱ자 교회당은 한식과 양식을 섞어 지은 건물이다.

한때는 남성도 자리와 여성도 자리 사이에 흰 휘장을 치기도 했다.

예배당 내부는 성도들이 앉았던 마루에 비해 강단을 2단계 계단으로 쌓고 그 위에 목회자가 딛고 선 발판까지 합쳐 모두 3단계 구조를 하고 있는데 이 것은 구약에 나오는 지성소를 본떴다고 전해 내려오고 있다.
 김제=글. 사진/ 이미나  김용두 기자 ~순복음 가족 신문에서

 

 

김제의 금산교회 - 한낯 일꾼이었던 마부 이자익이  주인보다 먼저 장로가 되고

 주인 조덕삼은 나중에 장로가 되어 이자익 을 서울에 신학대학에 유학시켜 뒷바라지 하며 기독교계의

 큰 족적을 남기게 한 이야기가 전해져오고 있는 전북 김제의 금산교회

 

 

 

* 마부 이자익이 지주 조덕삼보다 먼저 장로가 되었던 이야기

- 1907년 9월17일에서 19일까지 모이는 대한예수교 장로회 독노회가 평양에 있는 장대현 교회에서 열렸다.

 선교사 38명, 한국인 장로 40명, 모두 78명이 모였으며, 배우지 선교사는 사도행전 1:8을 봉독하고 '증인'이란 제목으로 설교를 하였다.예배가 끝나자 창립노회를 조직하고자 개회를 선언하였다

. 이때 평양 선교부에서 시역하고 있던 마포삼열 (A.S,Moffet)선교사가 초대 노회장으로 선출되었다.

 

  1907년 6월 20일 평양 장로회 신학교는 제1회 졸업생 7명이 배출되었다.

 이들은 독노회에서 최초로 목사안수를 받앗다.

이때 안수를 받앗던 한국인들은 길선주, 방기창,서경조, 송인서, 이기풍, 양전백, 한석진 등이었다. 독노회를 조직한 기념으로

이기풍 목사를 제주 선교사롤 파송하는 일도 있었으며, 

 다른 목사들은 모두 각 지역으로 배정을 받고 전도목사로 활동을 하고 있엇다.

 이때 모인 제 1회 독노회에 전라대리회에서는 금산교회 장로 2명을 가택 청원하였다.

이 청원이 허락되자 곧 금산교회에서는 당회장 최의덕 (L, B, Tate 미국남장로교 해외선교부의 조선선교사로 파송을 받아 1892년11월6일 인천 제물포항에 도착 언더우드(H.G. Uvderwood) 선교사의 사회로 공동의회를 개회하고 장로투표를 실시하였다.

  그런데 모두들 조덕삼 영수가 먼저 장로가 되리라고 생각했었지만 상황은 달랐다.

생각지도 않았던 마부 이자익 영수가 그만 장로롤 피택이 되는 사건이 벌어지고 말았다.

 지주 조덕삼 영수는 발표하는 그 자리에서 발언권을 얻고 교인들에게 인사를 하였다.

 "우리 금산교회 교인들은 참으로 훌륭한 일을 해냈습니다

. 저희 집에서 일하고 있는 이자익 영수는 저보다 신앙의 열의가 대단합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이 말을 들은 금산교회 교인들은 조덕삼 영수에게 큰 박수를 보냇다. 얼마나 아름다운 장면인가.

리스도 안에서는 높고 낮음이 없으며, 있는 자와 없는 자가 다함께 어울려 사는 그 자체가 신앙의 공동체임을 확실하게 배웠던

 조덕삼 영수의 태도는 한국 교회에 큰 충격을 던져주었다.

사실 1893년에 설립되었던 서울의 승동교회에서는 백정 출신인 박성춘 집사가 먼저 장로롤 선출되었다

하여 양반들이 승동교회를 이탈하여 안국동에 안동교회를 설립하였다.

  또 서울 연동교회는 1894년 갖바치들이 모여 예배를 드렸는데, 이 교회에서도 갖바치 출신 고찬익 집사가 먼저 장로로 선출되었다 하여 양반들이 이탈하여 종묘 근방에 묘동 교회를 설립한 역사가 잇었다.

 이러한 사건을 바라볼 때 금산교회 교인들도 훌륭하고 조덕삼 영수는 더 훌륭하였다.  ->

  출처: 이자익 이야기/김수진저 34-35page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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