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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안에서/국내 성지순례

유진 벨 선교사 기념교회, 오웬기념각, 우월순 선교사 생가(生家)

by 小潭(炯曉) 2012. 3. 31.

 

 

 

유진 벨 선교사 기념교회

1895년 미국 남장로회 선교사로 한국에 온 유진 벨(Eugene Bell,한국명 : 배유지)은

 나주,목포,광주 등 주로 전라도에서 활동하며 많은 학교와 병원, 교회를 세웠다.

유진 벨 선교사의 업적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유진 벨 선교사 기념교회는 광주광역시 남구 양림동 수피아여자고등학교 안에 위치해 있다. 초기, 이 건물은 건축 헌금 기증자의 이름을 따 코넬리아 커티스 기념교회라 불렀다.

 그러나 유진 벨 선교사의 업적을 기념하기 위해 유진 벨 선교사 기념교회로 명칭을 변경하게 됐다.

 1923년 건축을 시작해 이듬해 완공된 이 교회는 반지하 건물로,

아래층은 선교사 자녀들을 위한 학교와 선교사 숙소로,

 윗층은 주일 오전 사역을 마친 선교사들이 한 자리에 모여 예배 드리는 장소로 활용됐다.

 

 

 

 

1904년 12월 25일 광주최초의 에배를 드렸던 배유지 목사의 사택
그 예배를 드렸던 배유지 목사님의 사택 자리가 사직도서관 정문 바로 옆에 있다

 

이 곳은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1904년 12월 25일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 배유지 목사가 광주에서는
처음 예배드린 곳으로
그 거룩한 뜻을 길이 기리어 여기 돌비 하나 세우니라

 우일선 선교사 사택과 유진 벨 기념교회 사이에 있는
수령 400년된 호랑가시나무.

 광주기독병원 간호전문대학 안에 있는 오웬기념각은 유진 벨 선교사와 함께

전라남도 최초 선교사였던 클레먼트 C.오웬(한국명 오기원)과 그의 할아버지 윌리엄을 기념하기 위해 1914년에 세운 2층 건물이다.

회색 벽돌로 지은 이 건물은 객석에서 설교단을 내려다 볼 수 있도록 1층 바닥과 2층 발코니를 모서리의 설교단을 향해 경사지게 만든 것이 특징이다. 이 건물은 주로 교회로 사용되었으며,

 당시 크고 작은 문화행사가 열려 문화운동을 파급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현재는 광주광역시유형문화재 제26호로 지정되어 있다.


배유지 목사와 함께 전남과 광주 선교의 기둥이었던 오웬 선교사는
1909년 4월 장흥의 어느 시골에서 전도활동을 하던 중 급성폐렴으로 소천한다.
오웬기념각은
선교사 오웬(Owen)과 그의 할아버지(William)를 위한 것으로,
미국에서 그의 친지들이 보내 준 돈으로 1914년 건립되었다.

 

1946년 1월 한국에 도착한 우월순(R.M.wilson.1908∼1926) 선교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의술로 전한 인물이다.

광주기독병원 2대 원장이었던 그는 1925년 나환자 치료를 위한 전문 진료소를 만들었고

이를 계기로 애양원이 탄생하게 됐다.

사진 속 건물은 우월순 선교사가 광주에 거할 당시 사용한 사택으로 광주에 있는 현존 양식 주택으로는 가장 오래된 건물로 알려져 있다.

이 건물은 1989년 기념물로 지정돼 광주광역시에서 관리하고 있다. 

 

1904년 12월 25일 광주 최초의 예배를 드린 광주 선교부는
1905년에는 진료소도 개소하였는데 배유지 목사의 임시사택에서 주일 예배를 드리고
주중에는 배유지 목사의 사택이 진료소로 이용되었다.
이 선교 진료소의 책임은 의사 놀란이 맡았다.
놀란 다음으로 1908년 합류한 우일선(윌슨) 선교사가 진료소를 맡는다.
우일선 선교사가 1920년대에 건립한 사택이다.

양림동산
‘이 땅에 복음을 전파하다 돌아가신 미국인 선교사들과 가족 22인이 묻힌 묘
당시에 한국으로의 선교는 죽음을 의미할 만큼 열악한 선교조건이었지만
이들은 주님을 위해서 기꺼이 그 순교의 길에 들어섰던 것이다.
이들의 고귀한 헌신과 희생을 통해 우리가 지금 복음을 받고 구원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100년전 서현교회를 세우신 유진 벨 선교사님의 발자취가 곳곳에 남아 있다

 

순복음 가족신문참조  소담 옮긴글